- 세상도, 교회도 스스로 속고 남도 속는 삶을 많이 삽니다. 보기에는 성공하고 잘 사는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교회까지 스스로 속고 남도 속는 신앙생활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절입니다.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했으면서 된 것 같이 생각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5,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어떻게 하면 스스로도, 남도 속지 않는 구원 이룰 수 있을까요?

 

1. 각각 자신과 자신의 일을 살피라 합니다. (i,4)

- 1절에서 자신을 살피라고 합니다. 4절에서는 자신의 일을 살피라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도, 자기가 하는 일도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착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교회는 죄 다루는 곳입니다.(1) 자신을 잘 살피고, 성령충만하고, 온유한 심령(자아가 처리된 믿음의 사람) 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죄 문제 드러내는 곳이고, 들어낸 죄들을 내 죄처럼 끌어안고 기도해주고 애통해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5) 이럴 때 주님의 사랑의 법이 성취 되는 것입니다.

- 다윗과 사울 왕이 좋은 예입니다. 다윗은 자신과 자신의 일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살피는데 성공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사울은 철저하게 자신과 자신의 일을 살피는데 실패 합니다. 지혜롭고 용맹한 아들 요나단의 장점을 하나도 살려주지 못한 채 값없이 죽게 한 것입니다. 스스로 된 줄로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2.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 합니다. (6)

- 6절에서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하십니다. 여기서 모든 좋은 것을 물질적인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진정 좋아하는 것은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특히 마음 중에도 죄로 인해 무너지고 망가진 마음을 진솔하게 쏟아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픈 마음을 나누지 못한 채 신앙생활 할 때 겉도는 인생, 겉도는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아무것도 된 것이 없는 스스로 속이는 자가 되고 남도 속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 말씀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좋은 예가 베드로와 가롯유다입니다. 가롯유다는 제자이지만 예수님과 마음을 열지도, 나누지도 않습니다. 사단이 그 마음을 틈탑니다.(13:28) 결국 돈에 휘둘리다가 예수님을 떠납니다. 30에 팝니다. 반면에 베드로는 마음을 조금도 숨기지 않습니다. 실 수 많이 합니다.(26:33~35)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사랑하시고 끝까지 붙잡아 주십니다.(21:15~19)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던 것입니다. 교회는 마음 쏟아내는 곳입니다.

 

3.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함을 알라 하십니다.(15)

- 15절에서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세상은 보이는 형식과 그렇지 않다는 이분법의 싸움으로 편할 날이 없습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구원은 보이는 형식이다. 아니다. 의 이분법적 논쟁으로 소모전을 벌일 것입니다. 그 결말은 십자가 없는 복 받는 종교인, 종교적 신비에 젖어 사는 종교인으로 전락되고 말 것입니다.

- 할례와 무 할례의 논쟁이 내포하고 있는 본질은 보이는 그럴싸한 것과 보이지 않는 그럴싸한 것의 대립입니다. 이 모든 대립과 논쟁은 결국 십자가를 방해하고 피하려는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거기에 놀아나는 사람들의 작난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이 분명하게 정리합니다. 14,15절입니다. “나는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 물질중심의 세상도, 나도 십자가에서 죽었다.” 그래서 말한다. “할례나 무 할레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롭게 지으심을 입은 것만이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