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 (18~23)

-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들의 원조는 솔로몬을 지지했던 대제사장 사독입니다.(왕상1,2) 순간적 판단은 잘 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 후입니다. 대제사장으로서 솔로몬의 무서운 타락(왕상10,11)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는 왕국의 분열이었고, 두 왕국 모두 타락의 길을 걸었고, 종국에는 이방나라들에게 나라를 빼앗깁니다. 세상 좋음에 취한 결과입니다.

- 그 사독의 후예들인 사두개파 사람들이 부활과 영생의 길 활짝 여시려는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합니다. 세상 좋음에 취한 저들에게 예수님이 위협으로 닥아 왔기 때문입니다. 영생의 소망보다 현재의 축복과 안일함에 빠져있는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는 사두개파의 누룩이 나를 부풀리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모습 살펴 볼 때입니다.

 

2.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24~25)

- 24, 25, 부활이 없다는 저들의 질문에 예수님이 답하십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이렇게 말씀하심은 이스라엘 지도자들로서 특히 제사장을 비롯해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을 전담하는 자들로서 어떻게 성경의 기본도, 하나님의 능력의 기본도 모르고 있느냐?”는 예수님의 책망의 말씀입니다.

- 성경전체가 말하는 큰 메시지가 있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인데 자신들이 누렸던 세상의 기득권을 배설물처럼 버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갈바를 알지 못하고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났습니다. 모세가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기생 라합이 자신의 생명을 담보하고 정탑꾼을 숨겨 주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굶주린 사자들 앞에서, 펄펄 끓는 용광로 앞에서 조금도 위축 되거나 두려움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 외 얼마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명까지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본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화진의 선교사 묘역에 가면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내 신앙, 내 삶의 여정을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부활 것을 믿고 자신들의 삶을 불태운 사람들이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도 만찬가지입니다. 부활 후 누릴 영원한 본향을 바라고 모든 세상의 좋음을 뒤로한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들의 행렬을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25) 이처럼 분명하고 선명한 부활과 영생의 사실을 부정하고 약화 시키는 사두개파의 전염성 강한 누룩을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은 죽은 자 아닌, 산자의 하나님(26,27)

- 26, 예수님께서 죽은 자의 부활을 말씀하시면서 출3장의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을 말씀하십니다.“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너희는 이 말씀을 읽어보지 못했느냐?”질문하십니다.

- 저들이 존경하는 모세가 출애굽의 위대한 역사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원인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산 신앙 때문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역동적인 믿음, 이삭의 절대순종의 믿음, 야곱의 침노하여 쟁취하는 믿음의 역사는 모세를 넘어 성경전체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결국 이 산 믿음, 산 소망의 맥에서 다윗이 나오고, 예수님이 나오십니다.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그도의 세계라산 믿음으로 세상 속에 참 소망, 영원한 기쁨 주며 삽시다.